우리는 먼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한국사람으로서 서경식 교수님의 국적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 생각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역사와 여행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러한 생각을 집착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나는 과연 어째서 일본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을까?” 또는 “국경을 건너는 것은 왜 이렇게 복잡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자기의 국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와 같은 새로운 의문점을 제시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그는 영국과 독일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계속해서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어디를 가더라도 다국적 사회와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이 남기는 문화적인 흔적도 만나게 된다.
디아스포라라는 외래어는 원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을 뜻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러 나라에 흩어진 어느 민족도 가리킬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유대인에 비유되는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다양한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디아스포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예로 자기 자신을 재일조선인으로 묘사하는 서경식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온 디아스포라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 그 자체를 야기하는 과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다. 저자는 그러한 관심에 표명의 한 형태로 런던에 있는 독일계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무덤을 방문하고 다양한 세계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하며 여러 유럽 나라의 유대인 대학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들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그 만의 디아스포라의 의의를 재해석함과 동시에 그 만의 역사회고 방식을 보여 준다.
비록 동아시아 나라 두 군데에 속하더라도,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라는 책들도 썼던 서경식은 이 책에서는 아시아 문화보다 유럽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아시아를 여행하면서도 대부분의 언급은 유럽 작가를 비롯한 유럽 화가이며 저자의 개인적인 관심을 가장 심도있게 다루는 분야는 유럽 작곡가이다. 이 책이 새로운 다문화적인 읽기 경혐을 독자인 나에게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관심과 배경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원래 일본어로 쓰여진 이 책의 김혜신 규수님이 번역한 한국어 번역본을 읽음으로 서로 공통점이 없는 나와 저자가 느꼈던 다문화 경험은 서로 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미국 역사나 문화를 거의 언급하지 않아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미국 국적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미국을 떠난 미국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정작 나는 미국인 디아스포라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인 디아스포라라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미국에서는 어느 민족의 디아스포라 구성원을 찾을 수 있지만 미국은 스스로 디아스포라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민자의 나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 의지대로 미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도 그 사람들을 이민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미국인은 다른 나라에 이사가서 그 나라에서 평생을 보내도 영원히 이민자가 아니라 그냥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엑스패트리어트라는 영어 단어로 명명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서경식과 같은 재일조선인의 상황에서는 태어난 나라에서 평생을 보낼 뿐만 아니라 하물며 태어나기도 한 나라의 완전한 시민이 결코 될 수 없다.
출생 시민권이 있는 미국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의 차이점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해외 여행을 시작하기 전인 20대 중반에 모국과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다른지도 구체적으로 몰랐다. 영국 시인 루디야드 키플링이 그의 시 속에서 말했듯이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영국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미국인들은 영국인보다 자주 여행하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이로니하게도 미국 여권은 세계에서 제일 힘이 있는 여권들 중 하나이다. 예전에 미국 여권은 세계에서 제일 힘이 있는 특권으로 인식되었지만 최근에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의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인보다 더 자유롭게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일본 여권을 교부받을 수 없는 처지어서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서경식은 해외 여행을 하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특별한 서류가 없으면 거주 국가인 일본에 돌아갈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경을 건너는 것이 아무리 불편해도 서경식이 멀리 여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 한다. 어렸을 때 형제들이 한국에서 정치범이 되었기 때문에 유학할 기회를 잃은 그가 무엇을 찾으려고 여행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의 문화적 갈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종류의 교육을 찾기 위함이라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에 가서 그 나라들의 예술과 문화에 노출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의 처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서경식이 세계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하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그 것들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보는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예술이 주는 잇점 중에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에 서경식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보러 가고 연주회에 참석하며 한 나라에 속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의의에 대한 가르침을 배운다.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등장하는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아주 유명한 그림 <안개 쌓인 바다 위의 방랑자>를 예로 들어, 서경식은 “나는 나 자신이 그 나그네처럼 혼자 서 있는 것만 같다”고 쓴다. 또한 그는 “고갯길에 선 내 눈앞에는 ‘근대’에서 ‘근대 이후’에 이르는 길이 뻗어 있다. 그 길은 구름과 안개의 바다에 뒤덮여 앞을 잘 가늠할 수 없다”라고 쓰며 “나는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야말로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이 앞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 생학한다”고 말한다. 다른 장에서 저자는 광주 비엔날레에서 미국에 살았던 니키 리라는 한국인 사진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게 되는 것을 그려 나간다. 그 스냅시진인 작품의 피사체는 “히스패닉계의 대도시 빈민층”이나 “오하이오주의 가난한 백인”과 같은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지만 모든 사진 속에서 “어디에나 니키가 찍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니키 리가 사진에서 “어떤 때는 남부의 가난한 백인, 어떤 때는 월가의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하는데 그 용모는 아무리 보아도 동아시아인의 그 것이었다”고 서경식은 묘사한다. 이 “새로운 새대의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아이덴티티에 대한 갈등”을 다루는 작품을 통해 서경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고찰한다. 그는 아직도 “확고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왜 그것을 계속 자문하는가 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파농으로부터 받은 일격 덕분이다”라고 말한다. 위에 언급한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나크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 겸 철학자 프란츠 파농이다. 60년대에 파농은 “식민주의는 타자의 계통적인 부정이며 타자에 대해 인류의 그 어떤 속성도 거부하려는 광폭한 결의이기에 피지배 민족을 절박한 지경까지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진정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만들다”고 썼다.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파농의 그 문장을 고등학교 때에 읽었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디아스포라 기행> 같은 책에서 식민주의에 관한 이론을 세운 파농을 소개한다. 파농 이외에도 책에서 등장하는 다른 20세기 작가들 중에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와 파울 첼란도 있고 20년대와 3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오스트리아인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도 있다. <어제의 세계>라는 자서전에서 츠바이크는 “나는 1881년 하나의 거대한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하물며 그는 “하지만 그곳을 지도 위에서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곳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적었다. 그는 이 책을 고향인 빈에서 쓰기 시작하고 나치로 부터 도망간 브라질에서 완성했다. 그는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며, 기껏해야 지나가는 객이다. 내 마음이 택한 진정한 고향 유럽도, 다시금 동포끼리의 전쟁이라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과 다름없이 제 몸을 찢은 이후로 내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일본에서도 항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끼는 서경식이 츠바이크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큰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에게 드는 유일한 질문은 서경식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소설가 중에 하나인 츠바이크를 어느 언어로 읽었는가이다. 원래 프랑스어로 쓰여진 파농의 인용구와 원래 독일어로 쓰여진 츠바이크의 인용구는 <디아스포라 기행>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한글로 번역되었고 일본어로 쓰여진 원문에서는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쓰는 글은 언어를 초월하여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이나 음악과는 다르게 번역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글의 한계성은 정치적이나 문화적인 경계를 건너가는 것의 어려움을 더 분명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영어 번역본이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영어 원어민인 나는 한국어 번역본보다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있지만 일본에 산 적이 없는 나는 한국어 번역본을 일본어 원문보다 훨씬 더 빨리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된 글을 읽는 것은 그 독서가 가지는 특유의 가치가 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매일 내 주위를 둘러싼 사회와 문화를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한글로 쓰여진 책을 읽을 때는 훑어보지 말고 모든 문장을 자세히 읽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서경식이 언급한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이 유대인 대학살을에서 살아 남고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글을 쓰게 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랐던 시절이 “근대”라고 부를 수 있는 어제의 세계라면 “근대 이후”라고 부를 수 있는 내일의 세계의 주인공들은 오늘날의 디아스포라의 구성원처럼 여러 언어와 문화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서경식은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이루, 전 세계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은 채 태어나 자란 땅을 뒤로 했을까”라고 쓴다. 그가 묘사하는 디아스포라는 원래 식민주의와 전쟁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앞으로는 전보다 그들의 의지로 모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나는 다른 한국에 있는 서양인 엑스패트리어트들과는 달리 나중에 한국 시민이 되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음의 비자를 어떻게 받을지와 같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 사실은 나에게 해외에서 살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21세기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상기시켜 준다.
미국인인 내가 한국인에게 한국 시민이 될 생각이 있다고 말하면 주로 그 한국인인 상대방은 믿지 않을 때가 많다. 게다가 한국인이 나에게 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냐고 물어보면 나는 한국어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한국인인 상대방은 그러한 대답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한국 문화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한국어에 대한 지식을 더욱더 탐구하고 싶어져서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이와 더불어 한글로 글도 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한국과 관련된 관심 뿐만 아니라 한국어 만이 가지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한 독특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국이 아닌 한국에 사는 것이 모국인 미국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 듯이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수록 모국어인 영어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서정식이나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등장하는 디아스포라에 속하는 예술가들과 작가들처럼 문화적인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의 위치를 세계를 통해 알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어느 국가에 속해있는가에서 찾기보다도 언어와 예술이 이끄는 국경 없는 나라의 시민 속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