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일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는 건축계에서 최고의 상으로 알려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이소자키가 일본의 가장 유면한 건축가들 중 하나라면 한국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누구일까? 내가 보기에는 그 건축가는 이소자키와 동갑이고 동경에서 같이 공부했던 김수근이다. 이소자키와 김수근은 공통점이 몇 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소자키가 프리츠커상을 받은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김수근이 50대에 일찍 죽지 않았다면 그도 프리츠커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라고 상상하게 되었다. 이소자키가 설계해 온 많은 건물 중 하나는 로스앤젤레스의 현대 미술관이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 살았을 때 김수근이 죽은 1986년에 개장했던 그 미술관을 자주 지나갔다. 만약 김수근이 살아 있었다면 로스앤젤레스에서 그렇게 멋있는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러한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서울에 있는 아라리오 뮤지엄에 방문했다. 김수근의 살아 있는 삶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라리오 뮤지엄은 옛날에 김수근의 건축 사무소였던 空間 사옥이라는 건물에 위치해 있다. 空間 사옥은 김수근이 직접 설계했던 70년대 초에 서울에 있었던 모든 건물들과 완전히 다르게 생겼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벽돌로 지어져 있고 외관이 담쟁이로 뒤덮혔기 때문에 그 어떤 면에서보다도 아시아 대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미국 동부 대학 교정에 있는 도서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좁은 복도와 계단으로 연결된 여러 작은 방으로 구성된 내부 공간은 도서관이나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마치 미로를 연상시킨다.
空間 사옥의 공간 활용을 일본식이라고 말하는 건축 평론가들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그 공간 사용은 일본 건축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미국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상적인 건축 작품으로 인해서 방문객을 많이 끌어들인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空間 사옥을 이용하는 아라리오 뮤지엄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예술 작품들이 많지만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는 그 예술 작품보다 건물 그 자체를 훨씬 더 많은 사진에 담았다. 또한 가장 잘 나온 사진들은 건물과 예술 작품 뿐만 아니라 일반 미술관에 없는 창문들을 통해서 보이는 경치까지 사진에 나온 것이다.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예술 작품들은 한국 예술가가 만든 것들이 아니라80년대와 90년대에 젊은 영국 예술가를 뜻하는YBA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데미언 허스트나 트레이시 에민과 같은 예술가가 창조한 것이다. 아라리오 뮤지엄에서 전시되어 있는 다른 작품들 중 거의 김수근과 동갑인 백남준의 텔레비전으로 만들어진 유머 감각이 풍부한 조각품 몇 개도 있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예술가인 백남준의 작품들을 대중 매체에서 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직접 본 것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주었고 이러한 독특한 공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게다가 외관상보다 많은 층수를 가진 아라리오 뮤지엄의 다른 층에서 내가 처음으로 들어본 씨킴이라는 한국 예술가의 무척 흥미로운 조각품도 만났다.
씨킴이라는 예술가가 누구일까? 알고 보니 그는 바로 아라리오 뮤지엄의 주인 김창일이다. 백만장자이며 사업가이기도한 김창일은 사업이 성공한 후에 예술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들을 직접 만들기도 시작했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김수근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김수근은 건축가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의 생전에 여러 예술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넉넉히 해 주었고 空間 사옥에서 건축과 예술에 대한 <공간 월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으며 空間 사옥의 지하실에서 예술 극장까지 운영했다. 김수근은 空間 사옥을 짓기 시작했을 때 건물을 완공할 만큼 충분한 자본이 없었지만 결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건물을 세상에 내보였다. 그러나 2010년대에 김수근이 없는 김수근의 건축 사무소는 파산선고에 놓여서 空間 사옥을 팔고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空間 사옥이 이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기능 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 건물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우리에게 예술이 가치도 있고 이와 더불어 돈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