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 화가이지만 그의 제일 유명한 그림은 로스앤젤레스 풍경을 묘사한다. 1967년에 그렸던 <더 큰 첨벙>이라는 그 그림은 가장 인상적인 로스앤젤레스를 보여 주는 예술 작품들 중 하나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에 이사오기 전에 로스앤젤레스에 살았던 나는 <더 큰 첨벙>을 사진이나 동영상에서 본 적이 많지만 그 그림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곳은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지금 거기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 회고전은 5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려졌던 다양한 형태를 가진 테마로 여러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내가 꼭 가려고 했던 이유는 오랫동안 실물이 아닌 매체로만 봤던 <더 큰 첨벙>이 있기 때문이다.
푸른 수영장과 키가 큰 야자수들이 있는 현대건축의 단독주택을 담고 있는 <더 큰 첨벙>은 로스앤젤레스의 이상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국 지방 출신인 1937년생 데이비드 호크니의 눈에는 그러한 장면이 실제보다 그가 느꼈던 로스앤젤레스 실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중반에는 데이비드 호크니 뿐만 아니라 소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건축 평론가 레이너 반함과 같은 많은 영국인들은 오래되었고 전통적인 유럽 도시보다 빠르고 자유럽게 팽창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사랑에 빠졌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레이너 반함이 썼던 책들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로스앤젤레스에 대한 책들 중에 하나이다. 그 책들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 <싱글 맨>과 레이너 반함의 <더 큰 첨벙>이 실린 표지가 있는 비소설 <로스앤젤레스: 네 가지 에콜로지의 건축>이다.
21 세기의 로스앤젤레스는 나를 여전히 매혹시키지만 60년대에 처음으로 갔던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영국 사람의 입장에서 본 로스앤젤레스는 매력적인 도시일 뿐만 아니라 신세계처럼 보였을 것이다. 세대와 국적이 다른 데이비드 호크니와 나는 공통점이 많이 없지만 우리 둘 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로스앤젤레스의 매력을 즐긴다. 게다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영국인인 데이비드 호크니와 서울에 살고 있는 미국인인 나는 모국이 아닌 나라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그 나라를 관찰한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지 60년이 넘은 데이비드 호크니는 나보다 관찰력이 훨씬 더 뛰어난다. 그가 예전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보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고 했고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의 회고전에서 그 말을 증명하는 증거인 작품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회고전을 보고나서 <더 큰 첨벙>이라는 그림 뿐만 아니라 1974년에 나온 영화도 찾아서 봤고 그 것은 내가 즐기는 다른 많은 영화들처럼 여러 장르들과 형태들을 한 작품 속에 섞었다. 얼핏 보면 <더 큰 첨벙>은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허구인 장면들도 포함한다. 그 색다른 형태의 영화 줄거리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전 애인이 등장하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다룬다. <예술가의 초상>은 작년에 9천만 불에 팔렬지만 내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부러워하는 것은 성공도 부도 아닐 뿐만 아니라 관찰력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바로 영화인 <더 큰 첨벙> 속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집중력이다. 영화 속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보면 그가 일하면서 작품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인식하지 않는 고도의 몰입감이다. 그러한 몰입감이 없었다면 <더 큰 첨벙>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필요한 로스앤젤레스를 보는 방식을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