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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김영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자>라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도시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소설가가 아닌 나도 그러한 말로 자기 자신을 묘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강릉 안목해변 작은 서점에서 <여행자>를 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김영하가 언급한 그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외국어 번역본도 널리 읽히는 소설들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성공한 여행 에세이집도 한 두 권을 냈다.

2007년에 출판한 <여행자>는 김영하 작품들의 대부분과 달리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집도 아니다. 이 책은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혼합한 사진들까지 들어 있는 한 도시를 다방면에서 조망한 그만의 해석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새로운 개념의 메개체이다. 그 안에 담긴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사진들을 모두 조화롭게 연결해주는 독일에 있는 하이델베르크시의 매력은 <여행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뮌헨 공항을 제외하고 독일에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하이델베르크가 옛 성이 있는 인기가 많은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다.

김영하는 이 글을 쓸 때 하이델베르크를 세 번째로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그가 20대 때 한 유럽 기차 여행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큰 책 축제에 간 짧은 방문이었다. <여행자>를 장식하고 있는 풍부한 사진들은 김영하가 세 번째 하이델베르크 도보 여행을 하면서 찍은 것이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은 나를 김영하와 같은 세대인 배수아 소설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배수아라는 소설가는 독일어를 잘 하고 유렵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독일에 있는 한국인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는 소설을 쓴다.

김영하가 <여행자>에서 들려 주는 단편 소설은 배수아 작품과 마찬가지로 독일 배경과 한국인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그 소설의 주인공은 전문적인 작가로써 매년 프랑크푸르트 책 축제에 참여하는 한국 남자이다. 그는 독일에 갈 때마다 독일에 살고 있는 한국 여자와 불륜 관계로 만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남편은 카그라 증후근이라는 정신질환을 앓아서 아내가 아내인 척하는 타인으로 착각해서 어떻게 보면 불륜이 아닐 수도 있다.

<여행자>는 두 번째 부분을 구성하는 에세이의 주제가 소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 에세이에서 사진기에 관심이 많은 김영하는 하이델베르크의 일상 생활 사진을 찍은 콘탁스G1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저렴한 편이지만 품질이 좋은 렌즈가 장착된 콘탁스G1을 소유한 사람은 아마도 사진 덕후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김영하가 예전에 광화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유명한 프랑스 철학가 장 보드리야르가 가진 사진기도 바로 콘탁스G1이었다. 그 이야기에 몰입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여행자>의 내용은 잘 맞았다.

도시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직업을 가진 나로써는 김영하 같은 뛰어난 작가가 도시를 어떻게 보는지 또한 글 속에서 도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김영하는 불문학자 김화영이 말한 한 번 간 곳을 또 가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라고 보는 관점을 인용했다. 어느 도시라도 친구를 방문하는 듯이 긴 기간동안 여러 번 가야 그 도시를 진정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김화영의 관점은 큰 인상을 주었다.

뒷편 책날개의 글에 따르면 <여행자>는 여덟 대의 카메라로 여덟 개 도시를 담는다라는 연재의 첫 번째 책으로 출판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한 후 여전히 일본 동경을 다루는 두 번째 책만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김영하가 아름답든 추하든 사진 찍기 좋은 것들이 풍부한 로스 앤젤레스에 간다면 수집한 사진기 중 어느 것을 골라서 가져 갈 것인지 나는 아주 궁금하다. 요즘 김영하의 여행에 대한 새로운 책의 관심이 더욱더 높아지고 있어서 공백 기간이 있었던 <여행자>의 연재를 8편까지 쓰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