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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의 한국 이야기: 윤정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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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한국에 대하여 관심이 생긴지 물어보면 나는 주로 한국 영화라고 대답한다. 대학교를 다닐 때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대학교의 도서관을 더 자주 이용했다. 어느 날 도서관의 디브이디 수집품 중에서 아시아에 있는 나라라고 여겨지는 익숙하지 않은 많은 영화들을 발견했다. 그 당시에도 한국 식당과 교회의 간판들에서 한글을 본 적이 있어서 제목으로 쓰여져 있는 글자를 보고 그 영화들이 한국 영화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영화인지 잊어버렸지만 몇 편을 빌려서 집에서 봤다.

그 일이 있기 전 한두 해 전에 영화학 수업에서 나의 기억 속에 첫번째로 한국 영화라고 남아있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을 봤다. 그 동안 보아왔던 아시아 영화와 굉장히 다른다고 생각했고 또한 한국이 다른 아시아 나라와는 굉장히 다른 나라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다는 걸 느꼈지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몰랐다. 그 점을 알려고 계속해서 도서관에서 한국 영화 디브이디들을 빌려 보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 언어에 대한 지식을 점점 더 습득했다.

대학교 도서관의 대부분 한국 영화들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배포한 것이었다. 그 영화들 중에서 한국 사회를 강력히 비판하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감동 깊게 보고나서 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 갖게 되었다. 그 기대감으로 말미암아 “밀량” 후에 나온 “시” 라는 영화를 즉시 보게 되었다. 그 당시 처음 보았을 때도 21세기 영화 중 제일 좋은 영화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영화에 얽힌 사연을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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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시”의 주인공인 할머니 역활를 하신 60년대와 70년대에는 매우 유명하셨던 윤정희라는 배우는 90년대 중반부터는 은퇴를 하시고 현재는 프랑스에 거주하시고 계시다. 윤정희라는 배우가 그 동안에 은퇴 생활을 접고 다시 영화계에 나온 이유는 이창동 감독이 영화 “시”의 주인공을 생각했을 때 윤정희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셨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을 윤정희의 본명인 미자라고 붙이셨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옛날 영화를 유튜브 채널에 무료로 볼 수 있게 게시하자마자 나는 윤정희 씨 의 이전 작품들을 찾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유튜브에서 본 윤정희 씨 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 1967년의 흑백 영화인 “안개”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 영화에 기반을 둔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꿈과 같은 하지만 또한 악몽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 영화의 감독이 김수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영화들의 대부분은 다 그러한 분위기를 가졌다. 특히나 70년대에 나온 윤정희 주연의 “야행”과 “화려한 외출” 또한 그러한 분위기의 영화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예술적이고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영화를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 극장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가 윤정희 영화 시리즈를 발표핬을 때 나는 기쁨을 감치 못 했다. 이 주 전 수요일 오후에 “안개”를 보러 갔고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나는 맨 앞줄에 앉아야 되었는데 그러한 사실 또한 나는 개의치 않았다. 화면에 그렇게 가까이 앉아 있게 된 것이 영화의 신비스러운 외진 시골 마을의 배경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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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본 후에 다음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서면서 나는 나를 제외하고 모든 관객들이 다 한국인 어르신인 걸 알아차렸다. 양복을 입으신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다가오시고 윤정희의 영화들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할아버지께서는 윤정희 씨의 나이가 나보다 훤씬 많은데 어떻게 아냐며 놀라셨다. 나는 그 사실이 왜 중요한지 몰랐고 그 순간에 배우 윤정희 씨가 들어오시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극장에서 윤정희 씨가 나오는 다른 영화 몇 편을 봤다. 전에 본 적 없었던 영화들도 봤지만 내가 전에 본 “화려한 외출”의 상영은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이었다. 영화를 본 후에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려고 간 세니마테크의 카페에서 옆 자리의 탁자에서 남자 몇 명이 선글라스를 쓰신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그 탁자에 앉아 있는 아저씨 한 분이 나에게 말 걸어온 후 영화가 어떠냐고 물어봤다. 내가 그 영화를 너무 좋아하해서 인터넷으로 이미 본 적이 있고 여전히 좋아한다고 대답한 후 아저씨는 나를 그 탁자에 초대하고 할아버지가 바로 김수용 감독님 이라고 소개했다!

그 후 반 시간 동안 김수용 감독은 “화려한 외출”과 그의 다른 영화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그 대화의 초대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평범한 한국인이 아닌 한국말을 어떤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외국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대화에 참여한 사람중 한명은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강워도에서 온 대학생도 있었다.)

여려 날 동안 다른 영화를 기다리면서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고 얘기했다. 어떤 기자도 나에게 한국말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짧은 인터뷰를 녹음했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배우가 누구냐교 물어보았고 원래 배우에 관심이 없는 편인 나이지만 이 번에 쉽 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나에게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롭게 경험하게 해준 윤정희 씨야말로 진정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배우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