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주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홍상수 감독의 최신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면서 내가 로스엔잴래스에 살 때를 떠올렸다. 왜냐하면 한국어를 얼마 공부하지 않은 그 때 나는 로스앤젠네스에 본사를 둔 한국 신문 기자로부터 인터뷰를 요청받고 흥쾌히 응했다. 기자는 나에게 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처음 본 한국 영화들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한국 영화 평론가라고 소개한 기자는 다음 번 질문으로 내가 어느 한국 감독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봤고 나는 자연스레 홍상수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기자가 쓴 신문 기사에서 내가 “홍상수 작품이라면 닥치는 대로 보았고 영화제를 찾아 다니면서 홍상수 매니아가 됬습니다”라고 쓰여진 것을 보았다.
내가 그 기자가 쓴 말 대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기사에 쓰여진 말을 전부 거짓말이라고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로스엔잴래스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조금 멀리 떨어진 산타바바라에 거주할 때도 홍상수 영화를 보러 몇 번 로스엔잴래스에 간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홍상수의 작품들을 그렇게 즐기는 걸까? 그의 영화들은 흔히 볼 수 있는 액션도 없고 대스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특수효과도 전혀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그러한 블록버스터 같은 요소 대신에 독특한 유며 감각을 지니고 있다. 홍상수는 그의 영화를 통해 평범한 삶자체와 그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들의 행동과 태도의 부조리함에 대해 역설적인 즐거움을 보여 준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거의 다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되었고 그 영화 속 인물들이 거의 다 한국인이지만 나는 한국어나 한국 문화를 잘 알지 못 했을 때도 그의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단순한 코미디 영화의 감독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마다 일반 코미디와 달리 특이하거나 실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구조를 사용하며 그 구조 속에서 그 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예를 들면 한 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이나 시점을 달리하면서 그는 지루함 없이 같은 얘기를 두세 번 반복한다.
홍상수가 쓰는 시나리오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촬영된 영상도 단순하지만 결과들은 의외로 예술적이다. 그 영화 속에 있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며 서로 싸우고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는 남자 인물과 여자 인물들은 많은 역경을 겪으며 서로 다른 그 역경의 배경 속에서 살아간다. 구체적으로 남자 인물들은 절대 진리나 절대 윤리와 같은 굳은 믿음을 신봉함으로 인해 그들의 삶자체가 고난이 되고 너무 쓸데없이 적극적이여서 낭비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 인물들은 어떠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뭘 해야 될지 알 수 없어서 남자 인물들에게 의존하며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홍상수 영화 장면들의 대부분에서 인물들이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이 서로 피상적으로 대화한다. 그러한 대화로 인해 홍상수가 각본 없이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영화 제작 기법은 아침마다 그 날에 촬영할 장면의 대사를 꼼꼼이 쓰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노력의 결실로 홍상수 영화 속 대화들은 다른 영화의 대화들과 달리 평범한 한국인들이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처럼 자연스럽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마치 현실 속에 실존하는 사람들이 할 수도 있는 단절된 대화의 형태를 지니고 또한 아무 의미 없이 나열된 공허한 어리석음을 내포한 대화이거나 술 취한 상태에서 나올 법한 언어 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와는 상반적으로 제일 이해하기 쉬운 영화 대화라고도 말할 수 있다.
홍상수 영화에서 들리는 대화의 자연스러움은 나로 하여금 한국어를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영화들을 추천하게 만들며 영화를 볼 때마다 한국어 표현들을 쉽게 습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도 알수 있게 해준다. 홍상수는 한국 지방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만든 적도 있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촬영해서 한국에 처음으로 온 나에게 그 동안 배워온 한국어의 익숙함 뿐만 아니라 서울의 친숙함도 선사했다. 한국에 이사오자마 처음으로 간 극장에서 본 영화가 그 당시 홍상수 감독의 최신 영화인 것은 재미있는 우연의 조우였다. 해마다 한 번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그의 영화 주기로 인해서 그의 영화를 본 횟수를 더하면 내가 한국에 산 기간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게 될 기간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에 오기 전보다 살면서 매일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새로운 걸 훨씬 더 많이 알게 되지만 홍상수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가 나에게 여전히 가르칠 게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