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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가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때 한국인 독자들은 책의 제목에 대해서 놀랐던 것 같다. 게다가 서울에 관한 책을 항상 읽고 있는 내가 서울을 아는 서양인 친구에게 그 책에 대해서 얘기하면 그들은 더욱 더 놀랄 것 이다. 그 이유는 많은 서울에 온 서양인이 서울보다 더 도시다운 도시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미국 대도시보다도 높은 건물이 더 많고 대중 교통이 더 발달되 있고 사람도 훨씬 더 많다. 서울이 도시가 아니라면 과연 어디가 도시일 수 있을까?

뉴욕에서 유학했던 건축가 이경훈은 역설적이게도 서울을 도시답지 않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서울의 특징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그 특징 중에는 걷고 싶은 거리와 마을 버스와 방 문화와 아파트 단지 등이 있다. 그런데 서양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들은 다 좋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도시설계에 관심이 많고 도시에서 걸어 다니기를 즐기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걷고 싶은 거리”라는 것은 전혀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마을 버스는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볼 수 있다. 서울을 구경하는 관광객한테는 밤새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여러 방 시설만큼 새롭고 재미있는 것이 또 있을까? 이와는 반대로 아파트 동수를 제외하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가 서울에 거주하는 서양인이 도시 미관 차원에서 가장 싫어하는 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경훈의 말에 따르면 그러한 흔한 점들은 사람들이 서울의 공공 공간에서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활기를 빼버린다.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도시 맨해턴에는 왜 걷고 싶은 거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맨해턴이라는 도시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모든 곳으로 걸어 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거리는 자연스럽게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 이경훈은 뉴욕의 걷기 문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고 그 면에서 뉴욕과 서울을 비교할 때마다 아쉽게도 서울은 진다. 이 책의 저자 뿐만 아니라 서울에 대해서 글을 쓰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서울을 걷기 힘든 도시라고 묘사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 말을 비웃을 것이다. 약 미국의 90프로 지역에서 차가 없으면 거의 살 수없어서 그러한 곳에 사는 사란의 눈으로 본다면 서울은 걷기 쉬운 도시의 이상형일 수도 있다.

내가 보기로는 서울에서 이경훈이 그토록 싫어한 것 중에 하나는 인도에 주차된 차인 것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서울에 처음으로 와서 걱정한 것이 인도에 주차된 차가 아니라 인도에서 운전하는 사람이었지만 서울에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저자가 지적하는 이유를 명백히 이해한다. 뉴욕 같은 도시의 차가 전혀 없는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인사하고 대화하고 음식을 사 먹고 여러 다른 일상 생활을 한다. 이경훈이 말하는 서울 같은 도시가 아닌 도시의 인도에서는 사람들이 주차하고 담배를 비울 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울 사람들에게는 차가 필요하지 않고 여기 저기에서 걷기도 하지만 대체로 공공 공간에서 일상 생활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첫는에 보면 서울은 미국 도시와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나는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를 읽고 나서 서울과 미국 도시가 어느 면에서 서로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이경훈은 책에서 한국이 도시보다 자연이 원래 좋다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쓰고 있고 내 생각에는 미국도 똑같은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두 나라에서 도시에 일부러 자연을 도입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은 도시가 덜 도시답게 될 뿐이다. 내가 서울에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로스앤젤레스의 문제는 거기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에 살아 감에도 불구하고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차를 매일매일 운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거의 시골 생활다운 삶을 영위한다. 결국 이경훈의 견해에 따르면 “자연이 자연다워야 하듯 도시는 도시다워야” 한다는 게 바람직하다.

서울에 산지 3년이 되어 가는 하지만 뉴욕에 산 적이 없는 나는 아직도 서울에서 여러 면에서 즐겁게 나의 삶을 이끌어 간다. 그동안 서울 사람들에게서 서울에 대한 불평을 자주 들었지만 언제나 불완전한 미국 도시에 익숙해 있었던 나 였기에 그러한 점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했다.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나를 서울 사람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서울 사람도 자기 자신의 불평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서울이 이경훈 뿐만 아니라 다른 서울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장점이 많이 있고 미국과 유럽 도시들이 그 장점을 수용하면 좋겠다. 우습게도 서울이 뉴욕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두 도시의 지하철 역의 화장실을 비교하면 자연스럽게 정답을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