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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우리는 먼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한국사람으로서 서경식 교수님의 국적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 생각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그의 역사와 여행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러한 생각을 집착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나는 과연 어째서 일본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을까?” 또는 “국경을 건너는 것은 왜 이렇게 복잡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자기의 국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와 같은 새로운 의문점을 제시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그는 영국과 독일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계속해서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어디를 가더라도 다국적 사회와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사람들이 남기는 문화적인 흔적도 만나게 된다.

디아스포라라는 외래어는 원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을 뜻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러 나라에 흩어진 어느 민족도 가리킬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유대인에 비유되는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다양한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 디아스포라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예로 자기 자신을 재일조선인으로 묘사하는 서경식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온 디아스포라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 그 자체를 야기하는 과정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다. 저자는 그러한 관심에 표명의 한 형태로 런던에 있는 독일계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무덤을 방문하고 다양한 세계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하며 여러 유럽 나라의 유대인 대학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들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그 만의 디아스포라의 의의를 재해석함과 동시에 그 만의 역사회고 방식을 보여 준다.

비록 동아시아 나라 두 군데에 속하더라도,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라는 책들도 썼던 서경식은 이 책에서는 아시아 문화보다 유럽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 심지어 아시아를 여행하면서도 대부분의 언급은 유럽 작가를 비롯한 유럽 화가이며 저자의 개인적인 관심을 가장 심도있게 다루는 분야는 유럽 작곡가이다. 이 책이 새로운 다문화적인 읽기 경혐을 독자인 나에게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관심과 배경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원래 일본어로 쓰여진 이 책의 김혜신 규수님이 번역한 한국어 번역본을 읽음으로 서로 공통점이 없는 나와 저자가 느꼈던 다문화 경험은 서로 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저자가 미국 역사나 문화를 거의 언급하지 않아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내 미국 국적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미국을 떠난 미국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정작 나는 미국인 디아스포라에 속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인 디아스포라라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미국에서는 어느 민족의 디아스포라 구성원을 찾을 수 있지만 미국은 스스로 디아스포라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민자의 나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을 떠난 사람들은 그들 의지대로 미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도 그 사람들을 이민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미국인은 다른 나라에 이사가서 그 나라에서 평생을 보내도 영원히 이민자가 아니라 그냥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엑스패트리어트라는 영어 단어로 명명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서경식과 같은 재일조선인의 상황에서는 태어난 나라에서 평생을 보낼 뿐만 아니라 하물며 태어나기도 한 나라의 완전한 시민이 결코 될 수 없다.

출생 시민권이 있는 미국에서 태어난 나는 어렸을 때 속인주의와 속지주의의 차이점을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해외 여행을 시작하기 전인 20대 중반에 모국과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다른지도 구체적으로 몰랐다. 영국 시인 루디야드 키플링이 그의 시 속에서 말했듯이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영국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미국인들은 영국인보다 자주 여행하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이로니하게도 미국 여권은 세계에서 제일 힘이 있는 여권들 중 하나이다. 예전에 미국 여권은 세계에서 제일 힘이 있는 특권으로 인식되었지만 최근에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의 여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인보다 더 자유롭게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일본 여권을 교부받을 수 없는 처지어서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서경식은 해외 여행을 하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특별한 서류가 없으면 거주 국가인 일본에 돌아갈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경을 건너는 것이 아무리 불편해도 서경식이 멀리 여행하는 것을 막지는 못 한다. 어렸을 때 형제들이 한국에서 정치범이 되었기 때문에 유학할 기회를 잃은 그가 무엇을 찾으려고 여행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 묻는다면 그는 그의 문화적 갈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종류의 교육을 찾기 위함이라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에 가서 그 나라들의 예술과 문화에 노출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의 처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서경식이 세계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하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그 것들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보는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예술이 주는 잇점 중에 하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에 서경식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보러 가고 연주회에 참석하며 한 나라에 속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의의에 대한 가르침을 배운다.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등장하는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아주 유명한 그림 <안개 쌓인 바다 위의 방랑자>를 예로 들어, 서경식은 “나는 나 자신이 그 나그네처럼 혼자 서 있는 것만 같다”고 쓴다. 또한 그는 “고갯길에 선 내 눈앞에는 ‘근대’에서 ‘근대 이후’에 이르는 길이 뻗어 있다. 그 길은 구름과 안개의 바다에 뒤덮여 앞을 잘 가늠할 수 없다”라고 쓰며 “나는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야말로 ‘근대 이후’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이 앞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 생학한다”고 말한다. 다른 장에서 저자는 광주 비엔날레에서 미국에 살았던 니키 리라는 한국인 사진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게 되는 것을 그려 나간다. 그 스냅시진인 작품의 피사체는 “히스패닉계의 대도시 빈민층”이나 “오하이오주의 가난한 백인”과 같은 “미국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지만 모든 사진 속에서 “어디에나 니키가 찍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니키 리가 사진에서 “어떤 때는 남부의 가난한 백인, 어떤 때는 월가의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하는데 그 용모는 아무리 보아도 동아시아인의 그 것이었다”고 서경식은 묘사한다. 이 “새로운 새대의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아이덴티티에 대한 갈등”을 다루는 작품을 통해 서경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고찰한다. 그는 아직도 “확고한 답을 얻지 못했지만 왜 그것을 계속 자문하는가 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파농으로부터 받은 일격 덕분이다”라고 말한다. 위에 언급한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나크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 겸 철학자 프란츠 파농이다. 60년대에 파농은 “식민주의는 타자의 계통적인 부정이며 타자에 대해 인류의 그 어떤 속성도 거부하려는 광폭한 결의이기에 피지배 민족을 절박한 지경까지 몰아넣어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진정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하도록 만들다”고 썼다.

재일조선인 서경식은 파농의 그 문장을 고등학교 때에 읽었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디아스포라 기행> 같은 책에서 식민주의에 관한 이론을 세운 파농을 소개한다. 파농 이외에도 책에서 등장하는 다른 20세기 작가들 중에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와 파울 첼란도 있고 20년대와 3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오스트리아인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도 있다. <어제의 세계>라는 자서전에서 츠바이크는 “나는 1881년 하나의 거대한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하물며 그는 “하지만 그곳을 지도 위에서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곳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고 적었다. 그는 이 책을 고향인 빈에서 쓰기 시작하고 나치로 부터 도망간 브라질에서 완성했다. 그는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며, 기껏해야 지나가는 객이다. 내 마음이 택한 진정한 고향 유럽도, 다시금 동포끼리의 전쟁이라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과 다름없이 제 몸을 찢은 이후로 내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일본에서도 항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끼는 서경식이 츠바이크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큰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에게 드는 유일한 질문은 서경식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소설가 중에 하나인 츠바이크를 어느 언어로 읽었는가이다. 원래 프랑스어로 쓰여진 파농의 인용구와 원래 독일어로 쓰여진 츠바이크의 인용구는 <디아스포라 기행>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한글로 번역되었고 일본어로 쓰여진 원문에서는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쓰는 글은 언어를 초월하여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이나 음악과는 다르게 번역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글의 한계성은 정치적이나 문화적인 경계를 건너가는 것의 어려움을 더 분명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영어 번역본이 없지만 만약 있었다면 영어 원어민인 나는 한국어 번역본보다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어를 공부한 적이 있지만 일본에 산 적이 없는 나는 한국어 번역본을 일본어 원문보다 훨씬 더 빨리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된 글을 읽는 것은 그 독서가 가지는 특유의 가치가 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매일 내 주위를 둘러싼 사회와 문화를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한글로 쓰여진 책을 읽을 때는 훑어보지 말고 모든 문장을 자세히 읽고 심사숙고해야 한다. 서경식이 언급한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이 유대인 대학살을에서 살아 남고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글을 쓰게 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외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랐던 시절이 “근대”라고 부를 수 있는 어제의 세계라면 “근대 이후”라고 부를 수 있는 내일의 세계의 주인공들은 오늘날의 디아스포라의 구성원처럼 여러 언어와 문화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서경식은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세계 분할과 식민지 쟁탈전 이루, 전 세계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은 채 태어나 자란 땅을 뒤로 했을까”라고 쓴다. 그가 묘사하는 디아스포라는 원래 식민주의와 전쟁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앞으로는 전보다 그들의 의지로 모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나는 다른 한국에 있는 서양인 엑스패트리어트들과는 달리 나중에 한국 시민이 되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음의 비자를 어떻게 받을지와 같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 사실은 나에게 해외에서 살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21세기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상기시켜 준다.

미국인인 내가 한국인에게 한국 시민이 될 생각이 있다고 말하면 주로 그 한국인인 상대방은 믿지 않을 때가 많다. 게다가 한국인이 나에게 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냐고 물어보면 나는 한국어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한국인인 상대방은 그러한 대답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한국 문화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한국어에 대한 지식을 더욱더 탐구하고 싶어져서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이와 더불어 한글로 글도 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한국과 관련된 관심 뿐만 아니라 한국어 만이 가지는 언어 그 자체에 대한 독특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국이 아닌 한국에 사는 것이 모국인 미국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 듯이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수록 모국어인 영어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서정식이나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등장하는 디아스포라에 속하는 예술가들과 작가들처럼 문화적인 작품을 통해서 나 자신의 위치를 세계를 통해 알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어느 국가에 속해있는가에서 찾기보다도 언어와 예술이 이끄는 국경 없는 나라의 시민 속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Korea Blog: Ways of Looking at Kim Swoo-geun, Korea’s Poet of Brick, Concrete, and Much Else Besides

This year’s Pritzker Prize, informally known as the “Nobel Prize of architecture,” went to Isozaki Arata, one of the most celebrated architects in Japan. His more than 55-year-long career, the many and varied fruits of which include Los Angeles’ Museum of Contemporary Art, began at the University of Tokyo, from which he received his doctorate in architecture. In that program Isozaki had an exact contemporary by the name of Kim Swoo-geun (김수근), a Korean who had come to Japan after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to continue the architectural studies he had begu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Though Kim wouldn’t make it to the kind of age at which one typically becomes a Pritzker laureate — much less to late in the ninth decade of life, when Isozaki received the prize — he would go on to become South Korea’s first modern architect.

Or at the very least, Kim would become the individual with the most convincing claim to have led South Korea’s very first generation of modern architects. In just over a quarter-century he designed more than 200 structures in his homeland and elsewhere: nation-building institutions, museums, housing, houses of worship, a vast and controversial electronics-market complex, a stadium, and even a subway station. The variety of purposes to which he built is equaled by the stylistic variety in which he built them: having emerged from his architectural education in the same kind of Europe-facing modernist mode in which so many of his Japanese colleagues began their careers, he then spent most of his career in search of a genuinely Korean architecture suited to the modern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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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log: “Birthday,” the First Tearjerker About the Ferry Disaster that Killed 250 High-School Students

When I first visited Korea, less than three months had passed since the sinking of the MV Sewol. The pall cast by the more than 300 deaths it caused, 250 of the them having been high-school students, showed no sign of even potential abatement. I met up with a film-critic friend and we guessed at how long it would take the Korean film industry to come up with a Sewol-themed major motion picture, and more to the point, who exactly would make it. “I’m afraid it’ll be someone like Kang Je-gyu,” he said, naming the director of technically accomplished but ham-fisted blockbusters like Shiri (쉬리), an ersatz Bruce Willis-type action movie about the hunt for a North Korean assassin, and Korean War drama Taegukgi (태극기 휘날리며). Neither of us, fair to say, had very high hopes.

Five years after the ship sank, the big Sewol film has arrived. Birthday (생일) comes directed not by the likes of Kang but Lee Jong-un, a first-timer with Sewol credentials: she produced 2017’s Friends: Hidden Sorrow (친구들: 숨어있는 슬픔), one of several documentaries about the disaster that have come out so far, and participated in the campaign to fund another, Healing the Wounds with the Sewol Generation (세월호 세대와 함께 상처를 치유하다). Had it been up to me to choose the director for a story based on an event widely seen as the nation’s failure to protect its own children, I might have gone with Lee Chang-dong, whose filmography attests to an interest in the trauma his homeland inflicts on itself through its treatment of young people. But one could see Lee Jong-un, who worked as an assistant director on Lee Chang-dong’s 2010 film Poetry (시) and is now described as his protégé, as the next best thing.

Birthday counts Lee Chang-dong as one if its producers, and on some level feels as if it takes place in his cinematic reality. Starring as Jung-il and Soon-nam, a husband and wife whose teenage son died on the Sewol, are Sol Kyung-gu and Jeon Do-yeon, the former having previously appeared in Lee’s Oasis (오아시스) as a mentally disabled man who falls for a physically disabled woman, and the latter having previously appeared in his Secret Sunshine (밀양) as another mother whose young son is killed. Like her mentor, who shows impressive restraint even when dealing with the most harrowing subject matter, Lee Jong-un doesn’t go overboard — an expression I hesitate to use in this context, but one that fits the fears many must have had about the treatment of the Sewol disaster in a cinematic culture that pushes emotions to melodramatic heights as a matter of 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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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이정헌, <나의 소녀>

한국 서점과 미국 서점의 큰 차이 점 중 하나는 에세이를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이다. 미국 서점에서는 에세이 집들이 주로 한 책장의 한 선반을 차지하지만 한국 서점에서는 에세이집들이 가게의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다. 에세이를 열심히 읽을 뿐만 아니라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쓰는 나는 그 사실이 아주 즐겁다. 한국에 처음 이사왔을 때 한동안 임시 머물었던 홍대에 있는 동네 책방들을 검색하고 방문했다. 그러한 여러 방문 속에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에세이집이 내 눈에 띄었다. 그 책 제목은 <나의 소녀>이고 그 책에 담긴 에시이들 끝에 있는 모든 사진 속에는 똑같은 등장인물인 한 여자가 반복해서 나온다.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여자는 매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의 책 구입 동기는 사진이 주는 시각적 모습보다 사진의 분위기였다. 내가 그 사진들을 보는 것은 러시아 영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처럼 다른 사람이 만든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닌 마치 자기 자신의 추억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진들을 찍고 에세이들을 쓴 저자인 이정헌에게는 진짜 추억이며 각 에세이에서 해당하는 사진을 찍게 된 상황을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비록 이정헌이 사진작가로서 사용한 사진기나 필름과 같은 기술과 관련된 할 말이 있긴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7년의 기간 동안 찍었던 사진 자체들은 사랑 이야기를 한다.

<나의 소녀>에서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이정헌과 사진들 속에 나오는 여자는 함께 작업하는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서로 연애하는 사이이다. 그 사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긴 하지만 그러한 수고 없이도 저자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서 그 여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자가 보는 것은 그저 단순히 여자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의 눈으로 보는 여자이다. 그 사진들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것 중 하나는 그 사진을 찍게 된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 후에 사진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진들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우연히 찍었기 때문에 그 사진들은 더 인상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요즘 매일 인스타그램을 보며 어디까지가 일부러 계획된 시진들이고 어느 정도가 생활에서 우연히 찍힌 사진들이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나의 소녀>가 인스타그램이 유명해지기 전인 2005-2011년에 찍었던 사진들이 대부분의 인스타그램을 위해 찍은 사진들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고 더 깊은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러나 이고은이라는 책의 주인공인 그 여자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고 그 계정을 보면 <나의 소녀>와 비슷한 사진들도 발견할 것이다. 그 사진들 중 이고은의 얼굴이 보이지만 셀카가 아닌 것들을 찍은 사람은 아마도 사진 순수주의자이며 자기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 이정헌일 수 있지 않을까?

Korea Blog: Stoked by a Racist Ad, a K-Pop Sex Scandal, and an Anti-Communist Massacre, Can the Korean Demand for Apology Ever Be Satiated?

However robust the Korean supply of public apology has been lately, it may never even come close to meeting the Korean demand for public apology. Longtime Korea observers know this, just as they know that the apologies, and more so the expectations for and rejections of those apologies, have only just begun to flow forth from the Burning Sun scandal. What began as a possible case of sexual assault at a Seoul nightclub of that name last November has, over the past few months, blown up to encompass drugs, embezzlement, prostitution, police corruption, and hidden-camera sex footage rings. This increasingly complicated affair has drawn such rapt public attention not least because of the identity of one of Burning Sun’s managers: Lee Seung-hyun, better known as Seungri, a member of top boy band Big Bang.

“I sincerely apologize to everyone who has been involved in or taken offense from the recent controversy,” Seungri posted to Instagram in February. “I am sorry that this official explanation and apology is overdue. Surrounding acquaintances have discouraged me from apologizing right away, lest the uncertain details that have already snowballed create even bigger misunderstandings.” But it seems that even apologizing on one of the most popular social-media platforms in Korea (and later in concert) wasn’t enough to save him: first he was suspected of ordering the procurement of prostitutes for the nightclub’s clients, then his agency YG Entertainment terminated his contract, then the police charged him with distributing a picture taken with a hidden camera, then they charged him with embezzlement, and the dirt is apparently still being dug up.

Seungri isn’t the only celebrity brought low by the Burning Sun investigation so far: trawling the group chat rooms shared by these K-pop stars on Kakaotalk, Korea’s messaging app of choice, the dragnet has also ensnared, among others, the singer Jung Joon-young, who had used those rooms to distribute his own sex videos. “I admit to all my crimes,” says Jung’s statement of apology. “I filmed women without their consent and shared it in a chat room, and while I was doing so I didn’t feel a great sense of guilt.” It goes on: “Most of all, I kneel down to apologize to the women who appear in the videos and all those who might be disappointed and upset at this shocking incident,” adding an intent to “repent for my unethical and unlawful behaviors, which constitute criminal acts, for the rest of my life.” But neither those words nor any others are likely to put his image on the road to rehabil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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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log: Listen to the Seoul of the 1980s, Real or Imagined, with Streaming Mixes of Korean “City Pop”

Japanese names like Katomatsu Toshiki, Ohnuki Taeko, Yamashita Tatsuro, or Takeuchi Mariya may or may not mean anything to you. Rest assured, however, that there are Korean record collectors to whom they mean a great deal indeed. I see more than a few of them in person whenever Gimbab Records, a shop not far from where I live in western Seoul, puts on one of their sales of Japanese “city pop” records. These hotly anticipated events have usually involved an especially well-stocked collector parking a van on the store’s narrow street — almost an alley, really — and dealing the sacred pieces of vinyl straight out of the back. The sacredness comes through in the prices they pay, which surely exceed even what they cost new back at the height of Japan’s economic bubble in the 1980s. I’ve never brought along the kind of cash I would need to buy even half of what I might want, and deliberately so.

Like most city pop fans around the world, I just listen to the stuff on YouTube — and in fact discovered it on YouTube in the first place. If you’ve never heard city pop for yourself, you’ll better understand it not through a description of its sound but through a Youtube trip of your own. A YouTuber who calls himself Stevem has put together a video essay, “What Is Plastic Love?,” that explains just how a Japanese pop single from 1984, obscure even in its own country, racked up millions of views seemingly overnight after someone made it available in streaming-video form. That song, Takeuchi Mariya’s “Plastic Love,” has for the better part of a decade acted as the most effective gateway drug for the potential city pop enthusiast. All that time, the digitization and uploading of this “strain of lite, easy-listening J-pop that drew on a variety of American and Asian influences including funk, soul, disco, lounge, and even yacht rock,” as Rob Arcand and Sam Goldner put it in their Vice guide, has continued apace.

City pop’s 21st-century fan base knows no nationality, and its members have mixed, matched, and even remixed its-ever growing selection of acknowledged tracks into a great many themed streaming mixes, often visually accompanied by clips of vintage Japanese television and animation. For my money, the  Chicago-based Van Paugam (whose work includes a brief history of city pop) has long made the best city pop mixes on YouTube, but earlier this year the Japanese recording industry — an aggressive entity, even by recording-industry standards — had his channel taken down, forcing him to start over again. You can still hear all of his mixes on Mixcloud, though, and not every city pop-minded YouTuber has suffered the same fate. Some have avoided it by diversifying their musical selections, even to the point of looking, or rather listening, outside Japan entirely: take, for instance, the recent appearance of city pop mixes from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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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Blog: Fried Chicken’s Central Role in a TV Drama, a Police Comedy, and Korean Culture Itself

“Did you come because of the movie?” said a middle-aged man waiting a few places in front of me in line for fried chicken. He didn’t ask me, but a nearby family of four or five, and they had indeed come because of the movie, as had I. That movie, Lee Byeong-heon’s Extreme Job (극한직업), racked up more than 10 million ticket sales about two weeks after it opened in Korea January, a fairly staggering success in this country of 50 million people, especially for a comedy. The story of a bumbling team of detectives who stake out the headquarters of a drug-running operation by buying a chicken shop right across the street, it has made a fad of an unusual kind of fried chicken, one prepared with a marinade normally used for galbi, the beef short-rib dish available in Korean restaurants the world over.

Specifically, it has made a fad of galbi-marinade fried chicken available at the chicken shop I went to: Nammun Tongdak on the tourist-destination “Chicken Street” in Suwon, a large suburb about twenty miles from Seoul. Though it doesn’t have roots as deep as some of the other occupants of Chicken Street, its owners can claim to have put the dish on its menu two years ago, though they dropped it from the menu when it proved to be a slow seller, only bringing it back as soon as Extreme Job instilled in the public a jones for it, or at least an awareness of it. The movie’s main characters start using the recipe out of desperation: none of them have any experience frying chicken, so they have to make do with the culinary knowledge one of them picked up working at his family’s Suwon barbecue restaurant.

The hybrid dish immediately becomes a social-media sensation, and life has, to a degree, imitated art: even on a Monday afternoon, Nammun Tongdak had a line out the door and both floors filled with determined eaters. Though the taste of the chicken proved worth the trip — the Coca-Cola in the marinade gives it a metallic edge, though not an unpleasant one — I may never make another, not because of anything unpleasant about that particular chicken shop at all, but because there are so many to choose from, not just on Suwon’s Chicken Street but more or less everywhere in Korea. Known not by the Korean word for chicken used in other dishes but with the loanword chikin, fried chicken is, as any number of expat food bloggers might put it, not just a food in Korea but a way of life, a dish automatically chosen for so many gathering of friends, classmates, or co-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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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Interview on the Blunt Report Podcast: Korean Desires, Happiness, and a Frog in a Well

A few months ago, Konner Blunt came to Korea to record a few episodes of his interview podcast The Blunt Report, which “exists today to create interest and intrigue in the world around us.” You might remember me doing something similar with Notebook on Cities and Culture‘s Korea Tour, and now that I live in Korea myself, I seem to have gone from interviewer to interviewee.

You can hear “Desires, Happiness, and a Frog in a Well,” my 80-minute conversation with Konner about life in Korea, learning the Korean language, the task of observing and interpreting Korean society and culture, what one learns about one’s homeland when living abroad rather than just traveling, and much else besides at The Blunt Report‘s web site, on iTunes, or on Youtube.

일기: 전상인, <공간으로 세상 읽기>

나는 나 자신을 주로 도시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 것은 백 퍼센트 사실이긴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도시 뿐만 아니라 건축물과 길거리를 포함한 동네를 비롯하여 지하철과 같은 도시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시설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도시보다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에 관심이 더 간다. 전상인 교수님의 <공간으로 세상 읽기>를 읽고 나서 나의 그러한 관심을 더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집과 터 그리고 길로 나눠져있고 각각 부분에 해당하는 종류의 공간의 역사나 현재를 조망하는 중요점을 다룬다.

이 책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든 종류의 공간을 도시와 연결하고 도시를 이루는 개별요소를 설명한다. 또한 나처럼 도시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은 사람이 잘 아는 가장 유명한 도시 이론가인 루이스 멈포드와 이에 버금가는 제인 제이콥스와 이론가임과 동시에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도시 이론가들의 작업을 자주 언급한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러한 주제에 이미 친숙해져 있어서 이 책은 내가 읽는 다른 한글로 된 책들보다 훨씬 더 읽기 쉽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쓴 도시와 여러 가지의 공간들에 대한 것들을 요약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회학 교수님인 저자는 그의 관점을 모국인 한국의 도시와 공간으로 돌려 이 책을 통해 비판가의 역할도 맡는다.

공간빈국과 공간 후진국은 저자가 한국에 붙인 두가지 라벨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늘 날의 한국은 공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공간들이 아무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설계되어서 그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는 한국 도시들은 더 공들여 개발했던 다른 나라의 도시들에 비해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터를 어떻게 사용하고 그 위에 집과 길을 어떻게 놓을지를 완전히 새롭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이러한 서울에 대한 비판을 들은 적이 몇 번 있고 그 것의 이면에 담긴 생각을 이해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저자와 나를 비교하여 누가 더 많은 도시를 방문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세계의 적지 않은 도시들에 가봤고 그중 제일 좋아하는 곳들 중에 하나가 바로 서울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서울을 제일 위대한 유럽 도시들과 비교하면 서울이 매력이 없는 곳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고속도로로 덥혀 있고 뒤죽박죽으로 건축된 로스앤젤레스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서울이나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가 무엇이 문제인가가 아니라 서울이나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를 왜 사람들이 즐기는가이다. 내 생각에 지난 백 년의 서양 도시 이론은 서울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줄 수는 있어도 새로운 21 세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서울이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유럽 도시들에게도 당연히 가르쳐 줄 것이 있을 거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것이다.

Korea Blog: Luc Besson’s “Léon: The Professional,” a Cultural Phenomenon Going Strong in Korea for 25 Years

Léon: The Professional, the film that launched director Luc Besson into an international renown, came out a quarter-century ago this year. And in this case, “international renown” means he became known outside his native France not just in America but all over the world, and especially here in South Korea. Or rather, Besson the filmmaker has become less a household name in this country than Léonthe film has, and its name now seems known to more Korean households than ever. Most cellphone accessory shops stock Léon-themed cases, and as soon as I snapped one on my phone, everyone I encountered stopped commenting on its age — few Koreans today would be caught dead with an iPhone 5S — and started commenting on how much they love the movie the image on its back came from.

All this over a 25-year-old French hitman picture. The range of Léon merchandise available on the streets of Seoul — none officially licensed, naturally — hardly stops at cellphone cases: shirts emblazoned with drawings of Jean Reno’s rough-edged but ascetic assassin-for-hire and Natalie Portman’s smokingly, swearingly precocious orphan spill out of every other university-proximate clothing store. At the city’s frequent craft fairs young artists have applied their images to an ever-widening array of objects, often accompanied by the words “love or death” from the ultimatum so memorably laid down by Portman’s Mathilda to Reno’s Léon. Unlike London Review of Books tote bags, which last year enjoyed a moment in Korea as aesthetic objects more or less disconnected from their referent, Léon often gets referenced in its content as well, in text as well as on screen.

Read the whole thing at the Los Angeles Review of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