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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오기사의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내가 서울에 이사온 후에 제일 먼저 산 책은 오영욱의 <그래도 나는 서울 이 좋다>이었다. 오영욱 자신은 본명으로 건축계에서 일을 하고 오기사라는 필명으로는 책을 쓰고 삽화을 넣는다. 서울에 대한 관심이 이미 많았지만 한국어 독해 실력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독특하며 글이 짧은 <그래도 나는 서울 이 좋다>같은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던지도 모르겠다. 책을 사고 나서 몇년 간은 서울 그 자체를 발견해 가면서 점차적으로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그 동안 서울에 대한 불평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는 궁금한 것 한 가지가 항상 남아 있었다. 그 것은 제목에 왜 그래도라는 단어가 들어 있을까였다.

내 생각에 그 질문의 핵심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울을 다르게 본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서구에서 방문하러 오는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서울을 보자마자 그 동안 그들이 살아 왔던 도시들과 비교해서 서울 그 자체를 미래의 아주 멋진 도시라고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 서울의 엄청나게 많은 인상적인 특징 중의 특색있는 것들은 지하철로 어디로든지 갈 수 있는 것을 비롯하여 그러한 모든 지하철 역에 화장실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밤에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은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다른 점이고 미국이나 유럽 도시에 구석구석에 있는 노숙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 또한 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받은 인상과는 정반대로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서울이 불편하고 단점투성이인 도시인 것 같다. 서양인만이 인식할 수 있고 한국인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있거나 이와는 달리 한국인만이 인식할 수 있고 서양인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서울 출신인 오기사의 경우에는 서울을 명확히 보기위해 서울을 떠나고 다시 되돌아 와야 되었다. 한동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여유로운 남유럽식 생활을 하고 나서 오기사는 고향인 서울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스페인에서 돌아와서 서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매일매일 봐서 익숙해진 환경을 볼 수 없게 되긴 하지만 서울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특별히 강하다고 나는 느껴 왔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부지기수다. 예를 들면 내가 서울 사람에게 서울에 대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로 그들은 생활이든지 영화든지 서울을 너무 자주 봐서 서울에 대한 영화라는 개념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오기사가 제시하는 그러한 문제의 해결책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을 서울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마치 여행자가 여행하듯 살아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림 솜씨가 있는 건축가인 오기사가 주로 하는 습관들 중의 하나는 서울 근처 한강의 강둑이나 공항 또는 카페의 옥외 테이블에 앉아서 그 주변을 그리는 것이다. 콜라주처럼 사진들과 합쳐진 이 그림들은 <그래도 나는 서울 이 좋다>속에 많이 포함되어 있고 그 그림은 실존하는 서울과 오기사가 보는 서울을 동시에 보여준다. 책 속에 나오는 적지 않은 그림들에서 오기사의 빨간색 안전모를 쓴 작은 다른 자아가 냉소적인 논평을 하려고 등장하게 된다. 나는 서울을 알게 되면 될수록 빨간색 안전모를 쓴 인물이 생각보다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신촌의 현대 백화점에는 오기사의 그림이 붙혀진 에스컬레이터 벽 여기 저기에서 그 빨간색 안전모를 볼 수 있다.

그림에서든지 글에서든지 오기사는 서울에 대한 여러 가지 불평을 나열한다. 그러한 불평들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불평 뿐만 아니라 서울에 대한 불평들 속에 녹아 내려진 감상다. 오기사가 서울에서 싫어하는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기사는 <그래도 나는 서울 이 좋다>에서 서울을 묘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서울을 개선할 수 있는 제안들도 다방면에서 제시한다. 오기사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해결책들 중의 일 부분은 건물 앞에 의자와 탁자가 있는 공간들을 더 많이 짓고 건물 사이사이를 공중다리로 연결하는 것이며 건물의 옥상 위에 마당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시설물들이 지어지면 사람들이 서울을 더이상 못생긴 도시로 인식하지 않지 않을까? 아니면 결과는 예쁘게 성형 수술한 배우의 코가 코 자체는 예쁘지만 전체적인 조화는 부자연스럽듯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세부세부가 각각은 뛰어나도 하나의 서울으로서 잘 어울릴 수 없지 않을까?